김일구류 아쟁산조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해볼까 하고 티비를 켰더니, 국악 한마당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귀를 잡아 끄는 연주였다. 리모콘을 내려놓고 좀 더 보았다.

‘김일구류 아쟁산조’라는 설명과 함께 ‘성한 여름’이라는 곡이 연주되고 있었다. 아쟁은 바이얼린처럼 활로 켜는 악기였다. 흰 두루마기와 갓을 챙겨 입은 아쟁 연주자와 장단을 맞추며 추임새를 넣는 장구 연주자 둘이 낙엽이 깔린 한국식 정원에 앉아 있었다.

곡은 매우 화려했다. 익히 알고 있던 국악의 단조롭고 느린 박자를 벗어나 바이얼린 독주처럼 높낮이와 강약이 현란하게 변화했다.

머릿 속에서, 눈 앞에서 성한 여름이 떠 올랐다.

몇 달 전의 뜨거운 여름 생각이 시작되면서 생명력이 넘쳐 짙은 초록을 지나 검은 초록에 가까운 나뭇잎들과 무성한 가지, 얼굴을 들 수 없는 밝고 뜨거운 햇빛, 높은 하늘, 달고 풍요로운 과일들과 사방에 가득찬 매미소리 같은 것들이 한데로 섞여 아쟁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한참을 음악에 빠졌고 화면에도 빠져들었다. 동양화처럼 여백 가득한 앵글, 느릿느릿한 카메라의 움직임도 연주 화면과 아주 잘 어울렸다.

케이블TV를 끊은 지 1년이 넘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이 그자리를 점유하고 있다.

공중파 특히 공영 방송이 가야할 방향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재미는 좀 떨어지더라도 사람들의 세계를 더 넓혀주고 시청자들이 방송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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