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쿠리코 언덕에서 (7/10)

지브리의 작품인지 잘 모르겠다. (찾아보니 맞다)

포스터의 “첫번째 사랑 이야기”는 엉터리다. 사랑 이야기도 아니고 첫번째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다른 이들에게 뭔가를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심지어 여주인공 이름인 메르는 불어로 ‘바다’이다.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 바다를 향해 매일 올라가는 깃발, 태평양을 건너 온 엄마.

물론 메르와 슌이 서로 애틋한 감정을 갖기는 하지만, 두 감정의 부딪침보다는 사회의 오래된 것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고 확인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재미이고 눈에 띈다. 그 가치와 재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일 수도 있고, 카르티에라탱 같은 건축물일 수도 있다.

서울은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큰 도시이지만 규모와 역사에 비해 턱없이 재미 없다. 낡거나 오래된 것을 흔적도 없이 모두 걷어내고 새 것들로 채워 놓았기 때문이다. 서울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은 가득하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은 별로 없다.

먼지까지도 문화라는 과장된 주장에도 동의할 수 있을만큼 우리는 지나간 시간에 박정하고 매섭다. 오래된 것을 제대로 간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모든 새것은 언제나 오래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코쿠리코 언덕에서’ 같은 작품을 통해 지브리는 역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모아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2년 마다 새 휴대폰을 구입하고 눈으로도 귀로도 구분할 수 없는 영상과 소리를 위해 티비를 바꾸고 오디오를 바꾸어야 하는 시대에 이런 작품들의 의미는 당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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