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삶, 긴 그림자: 사슴벌레와의 철학적 조우

짧은 삶, 긴 그림자: 사슴벌레와의 철학적 조우

2023년 6월, 회사 게시판에서 우연히 사슴벌레 한 쌍을 맞이하면서, 나의 일상에 예기치 않은 작은 우주가 생겨났습니다.

짧은 삶, 긴 그림자: 사슴벌레와의 철학적 조우

인터넷을 뒤져 플라스틱 사육장과 톱밥, 놀이목을 들이면서도, 왠지 모를 책임감으로 ‘최선의 것’을 마련하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은 생명을 맞이하는 인간의 숭고한 이기심 같은 것일까요.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 한 번 스프레이로 사육장 안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책상 아래에 사육장을 두었다. 낮 동안은 숨어 지내던 그들이 밤이 되면 조용히 나타나 활동하는 모습은, 마치 인간 세상의 질서와는 다른 그들만의 은밀한 시간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첫 며칠 밤 동안 들려왔던 격렬한 소음이었습니다. 천장에 사육장을 부딪치는 그 소리는, 작은 몸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처절한 절규처럼 들렸습니다. ‘이들을 풀어줘야 하는가’ 하는 윤리적 고민까지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삼일 후, 그 소리는 거짓말처럼 멎었습니다. 포기였을까, 아니면 주어진 한계에 대한 조용한 수긍이었을까요. 그 침묵은 나에게, 익숙해진다는 것의 슬픔을 역설적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결국 2024년 여름 1년여를 살아 낸 암컷이 먼저 죽음을 맞았습니다. 머리가 분리된 채 사육장 구석에서 발견된 그 모습은 자연의 잔혹하고도 무관심한 순환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을 홀로 지내던 수컷마저 오늘, 미동 없는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젤리를 교체하려 뚜껑을 열었을 때,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으나 죽음을 직감했습니다. 천천히 몸을 들었을 때 배만 들리는 허무한 감각

미처 자유를 안겨주지 못한 미안함이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죽어간 사슴벌레 속에 반영된 나의 모습에 (놀랍게도 며칠을) 슬퍼했습니다. 이 작은 생명이 머금은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 나는 존재의 무게를, 그리고 묵묵한 자연의 이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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