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시간을 보낸다.
위 절제 수술 후 음식물이 소장으로 너무 빨리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위절제 수술을 받으면 위의 저장 기능이 약해져 음식이 너무 빠른 속도로 소장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덤핑 증후군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탄수화물이 빠르게 흡수되면서 혈당이 급상승했다가 인슐린 과다 분비로 인해 식후 저혈당이 오기도 한다.
출근하거나 외부에 있을 때는 이렇게 누워 있을 수 없어서 힘들 때가 많다. 그래서 집에서 하는 식사가 몸에 훨씬 편하고 부담이 덜하다.
문제는 누워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잠이 든다는 것이다. 이 또한 급격한 탄수화물 흡수로 혈당이 오르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식후 고혈당은 피로감과 졸음을 유발하고, 이어지는 반응성 저혈당 역시 졸음의 원인이 된다. 길어야 20~30분 정도의 수면, 아마도 렘수면일 텐데, 이 짧은 순간에 의미심장한 꿈을 꿀 때가 많다.
오늘 점심 식사 후 꿈은 대학 졸업식 같은 장면이었다. 나는 도서관 출입증인지 학생증인지를 반납하려고 여기저기 분주히 다니고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대학교 같은 공간이 처음인 아버지께서는 한 손엔 우산을, 다른 손엔 내 것인 듯한 우산을 들고 서 계셨다. 분주한 내 모습에 불안하거나 궁금하셨던지 뭐가 그리 급하냐고 질문하셨고, 나는 별거 아니라고 답했다. 정말 별거 아니었다.

나는 이미 아버지보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강하고 어른스럽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보다 나는 훨씬 더 어리고 미숙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내 아버지만큼의 신뢰나 든든함을 주고 있을까? 아닌 것 같다.
아버지는 내가 처음으로 대학교에 가던 날 학교 입구까지 나를 태워주셨다. 학력고사를 보던 날도 그랬다. 아버지는 내가 군대에 간 것을 보았고, 휴가를 한두 번 나온 것까지는 기억하시겠지만 그 이후는 모르실 것이다.
내가 부사망 독자, 의가사 제대로 전역한 것을 보지 못했고, 대학을 졸업하는 것도, 여자친구도, 상견례와 결혼식도 함께하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의 출생과 걸음마와 재롱도 물론 보지 못했다.
이제 와 아버지는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조바심 내지 말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아니면 늘 곁에 있다고? 아버지가 쭉 계셨다면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더 있었을까?
궁금한데 알 길이 없어서 조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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