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프란볼루 첫째날 – 그림 속의 집으로

사프란볼루 첫째날 – 그림 속의 집으로

튀르키예 10일의 기록: 동서양이 만나는 땅을 걷다

튀르키예 여정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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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의 배경이 된 외계의 마을, 괴뢰메.

잔뜩 정이 든 괴뢰메를 떠나 사프란볼루로 향한다. 버스로 9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이다. 네브셰히르 버스 정류장에서 앙카라로, 앙카라에서 다시 사프란볼루로 환승했다.

튀르키예 고속버스의 특징은 마치 비행기처럼 음료를 따라주고 간식을 나눠준다는 점이다. 대개 젊은 청년들이 담당하고 있는데, 한국과 달리 젊은이들이 기꺼이 이런 일을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장거리 버스 여행이었지만 큰 불편함 없이 잘 이동했다. 창밖으로 계속 이어지는 산 하나 없이 너르고 건조한 풍경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기도 했다. 끝없이 펼쳐진 아나톨리아 고원의 황량함이 오히려 평화롭게 느껴졌다.


사프란볼루는 동화책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컬러 그림책에 나오는 유럽의 오래된 목조 가옥들이 가득하다. 이곳은 실크로드의 중요한 경유지였다. 13세기부터 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했고, 특히 사프란 재배와 거래로 유명해지면서 ‘사프란볼루(Safranbolu)’, 즉 ‘사프란의 도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하던 상인들은 이곳의 카라반사라이에 머물며 사프란과 가죽 제품, 철제품을 거래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지어진 오스만 시대의 건축물들이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1994년, 유네스코는 사프란볼루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유네스코가 주목한 것은 단순히 건축물의 아름다움만이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 시대의 도시 계획과 건축 양식,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는 유산’으로서의 가치였다. 박물관처럼 보존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며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마을의 건축물들은 17세기 오스만 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1층은 석재로 튼튼하게 쌓고, 2층과 3층은 목재 골조에 회반죽을 채워 넣는 ‘하므 에비(Hımış Evi)’ 양식이다. 이 방식은 지진이 잦은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유연성을 제공했다. 건물들은 대부분 2~3층 구조로, 1층은 겨울 거주 공간과 저장고로, 위층은 여름 거주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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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눈에 띄는 것은 2층으로 갈수록 바깥으로 튀어나온 ‘추크마(Çıkma)’ 구조다. 좁은 골목길에서 실내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지혜였고, 동시에 1층의 상점들에 그늘을 제공했다. 창문은 격자 무늬의 나무 덧창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이슬람 전통에서 여성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바깥을 내다볼 수 있게 한 섬세한 배려였다. 붉은 기와 지붕과 하얀 벽, 짙은 갈색의 목재 골조가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마을엔 살짝 비가 내려 촉촉했고, 숙소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언덕길은 울퉁불퉁하지만 정감 넘쳤다. 조용하고 우아하고,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은 마을이었다.

숙소로 개조한 17세기 목조 가옥을 찾아갔다. 정말이지 역사 유물 같은 곳에 짐을 풀자니 새삼 신기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가니, 낮은 천장과 작은 창문, 두툼한 나무 기둥이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여기도 괴뢰메의 동굴 숙소처럼 좁았고 다소 불편하고 추웠지만,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300년 전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느긋한 저녁을 먹자고 나왔지만 숙소 근처에는 문을 연 곳이 없었고, 숙소의 아주머니께 물어보니 시장 쪽에 가면 많이 있다고 했다. 내려가는 길 역시나 재미있었다.

샤프란볼루에 왔으니 샤프란티는 먹어야겠지? 생전 처음 마셔본 샤프란티는 매우 건강한 맛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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