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금산은 어떻게 변했을까…궁금해 하며
열어본 이성복의 새 시집은
명.불.허.전
이었다.
아, 역시 시는 고통스러운 장르야. 라는 오래된 기억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절제와 상징.
단어 하나, 문장 부호 하나에까지 차고 넘치는 의미, 의미, 의미들.
그 풍요로운 생각의 넘침이 날 흡족하게 만든다.
‘토사물도 물기가 빠지면 추하지 않’은 것처럼 비루하고 남루한 삶도 견딜만 하다고 위로해 주는 시인의 속삭임이 너무 따뜻한 것이다.
24
좀처럼 달이 뜨지 않는
당신도 없이 나를 견디고
좀먹은 옷처럼
당신 떠난 자리를 봅니다
북이 아니라
나무통에 맞은 북채의 소리 같은
그런 이별이 있었지요
해는 졌는데
좀처럼 달이 뜨지 않는 그런 밝기의
이별을 당신은 바랐던가요
울지 않는 새의
부리가 녹슨 화살촉이었다는 것을
당신은 왜 일찍 일러주지 않았던가요
당신도 없이 나를 견딥니다
묵은 베개의 메밀 속처럼
나날이 늙어도 꼭 그만큼입니다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 문학과 지성사/ 2003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