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란 무엇인가 – 이토록 힘찬 아나키의 근본이여. ★★★★☆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의 소유란 무엇인가
에 감명 받고 있습니다.

1장의 첫구절을 잠깐 보세요.

만일 내가 라는 물음에 답해야만 한다면, 그래서 내가 한마디로 라고 답한다면, 나의 생각은 당장 이해될 것이다. 인간에게서 사상, 의지, 그리고 인성을 빼앗을 수 있는 권력은 곧 생사여탈의 권력이며, 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그를 살해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굳이 군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라는 또 하나의 질문에 대해 라고 마찬가지로 답할 때마다, 내 답변이 잘 전달되지 못했다는 노파심에 시달려야 하는 것일까? 두번째 명제는 사실상 첫번째 명제가 모양을 바꾼 것에 불과한 데도 말이다.
나는 우리의 정부와 제도들의 원리 그 자체, 즉 소유의 문제를 논하려고 한다. 이것은 나의 권리이다. 나의 연구에서 도출되는 결론이 틀릴 수도 있다. 이것도 나의 권리이다. 이 책의 끝에 가서 도달한 사유를 나는 책의 첫머리에 놓고자 한다. 이 역시 나의 권리이다.

이렇게 명료하고 힘차게 자신을 펼쳐보이는 글을 근래에 읽은 적이 없습니다.
틀릴 수도 있지만, 그것도 나의 권리이다 – 이 얼마나 당당합니까.
언어학과 인문학을 거쳐 철학, 그리고 소유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
프루동 역시 천재였습니다.
아나키즘이 – 어쩌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정치적으로 올바른' 정치일런 지도 모르는- 이렇게 근근히 명맥만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아나키스트들이 너무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탓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물에 대한 직관적인 통찰력이 타인을 두렵게 만들었던 게지요.
또한 그들은 너무 민감하고 부드러웠습니다.
그래서 그 순수한 감수성과 오감으로 시를 쓰고 소설을 쓸 수는 있었지만,
'역사'를 쓸 수는 없었습니다.

히틀러나 스탈린, 부시 같은 '배부른 돼지들'에 비하자면 바쿠닌과 크로포트킨, 프루동은 '배고픈 현인'쯤 되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혁명가'라면 응당 지녀야 할 강철의 의지, 그것은 아나키스트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ps. 출근하자마자
일찍 퇴근하여 푸르동에 한껏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대략 우울한 하루가 될 듯.
🙁

관련 글
움베르토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

이미 고인이 된 에코의 신작이 보이길래 냉큼 주문했는데, 읽어보니 초등학생을 위한 우화였다. 2학년 정도만 되도 충분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Read more

개구리. 모옌

'계획 생육'은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이다. 부부는 2명의 자녀를 출산할 수 있고 그 이상 넘어가는 아이는 호적에 올릴 수 없다. 남자들은 Read more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책인데, 산업 디자이너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개별적으로든 집단으로든, 우리가 만든 Read more

악의 사슬. 리 차일드

한동안 잊고 지냈던 하드보일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하드보일드의 매력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이다. 다 잡은 악당 앞에서 일장 훈계를 늘어 놓으며 Read more

“소유란 무엇인가 – 이토록 힘찬 아나키의 근본이여. ★★★★☆”의 1개의 댓글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