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10일의 기록: 동서양이 만나는 땅을 걷다
늘 ‘경계’에 서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 현대와 과거, 질서와 혼돈 사이. 여러 겹의 이미지가 겹쳐진 곳이 바로 이스탄불이다. 현실보다 상상에 가까웠지만, 바로 그래서 더 신비로웠다.
이스탄불은 기원전 600년대에 설립되었고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큰 도시이며 인구는 약 1,500만명이라고 한다.
크고 복잡하고 오래된 도시인데다가 언덕이 매우 많다. 고저차가 크니 계단이 엄청나게 많고 골목 – 언덕 – 큰 길로 이어지는 구조도 많아 구글 지도에 나오는 거리보다 체감 이동 시간은 늘 오래 걸린다. 게다가 몇백년 전에 만들어진 길이니 매우 좁고 구불구불하여 교통 체증은 상상을 초월한다. 걸어가면 30분인데 택시를 타면 60분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케밥은 보통 하루만 사용하기 때문에 케밥의 크기가 그 가게의 자존심이다>
이스탄불의 경계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그 지형적 특성에 대해 알아야 한다.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해협(아래 빨간 화살표)이 있는데, 이스탄불은 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마치 한강처럼 품고 있다. 한강이 서울을 남북으로 나누고 있다면 보스포러스 해협은 이스탄불을 동서로 나누고 있다. 해협을 기준으로 서쪽 이스탄불은 유럽과 연결되어 있고 동쪽 이스탄불은 아시아 대륙에 연결되어 있다.

<흑해와 마르마라해 사이를 관통하는 보스포러스 해협, 붉은 화살표>

<보스포러스 해협을 기준으로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어진 이스탄불>
그리고 유럽 쪽은 다시 골든혼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이스탄불은 크게 유럽 구시가지, 유럽 신시가지, 아시아 이렇게 3부분으로 구성된다.
이스탄불의 대중 교통은 크게 지하철, 트램, 버스, 페리, 푸니큘라가 있는데 이중 푸니쿨라가 조금 낯선데 언덕 전용 트램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이 모든 대중교통을 ‘이스탄불 카르트드’라는 충전식 교통카드 하나로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카드로 여러명이 이용할 수 있다. 한국처럼 거리에 따라 요금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지하철이든 트램이든 입구에서만 체크한다.
대신 현금은 사용할 수 없다.

<탁심광장을 오가는 푸니큘라>
이스탄불의 대중교통은 생각 외로 탈만했다. 특히 트램은 어디를 가든 같은 가격이고 천천히 시내를 훑어볼 수도 있었다.
어느 날은 아내와 둘이 트램을 타고 창 밖의 이스탄불을 감상하다가 둘 다 잠이 든 적도 있었따. 종점에서 차장 아저씨가 깨워주었는데, 졸린 눈을 비비며 우리는 길을 건너 다시 트램을 타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갔다.
서울처럼 빈틈 없이 짜여져 있지는 않지만, 이스탄불의 버스와 지하철, 트램으로 연결되는 대중 교통은 역사적 풍경과 어우러져 아주 근사한 추억을 만들어 줬다.
<갈라타 타워를 오르다가 뒤돌아 본 언덕 길>
탁심 광장
이스탄불의 일정은 탁심광장에서 시작됐다. 탁심광장은 터키의 명동이다. 온갖 나라의 관광객들로 가득해 어깨를 맞닿아야 길을 걸을 수 있고 상점과 레스토랑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스탄불의 심장이 뛰는 곳, 지금의 탁심은 이스탄불 현대 문화의 중심지다.
원래는 오스만 시절 물을 분배하던 ‘분배소(Taksim)’가 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집회와 축제, 일상이 교차하는 상징적인 광장이 되었다. 관광객과 현지인이 자연스럽게 뒤섞인 풍경은 이 도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인상을 준다.









돌마바체 궁전
돌마바체 궁전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1843년부터 1856년까지 13년간 지어진 이 궁전은 오스만 제국 31대 술탄 압둘메지드 1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건설했다. 오스만 제국 마지막 여섯 술탄의 거처였고, 터키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가 1938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특히 하렘이 인상적이었는데, 흔히 묘사되는 반라의 여인으로 가득한 환락의 이미지와 달리 막상 집무실과 큰 차이가 없었다. 온통 금으로 장식된 공간들. 14톤의 금이 천장 장식에 사용되었고, 4.5톤의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홀을 채우고 있었다. 그 위세에 기가 죽을 정도였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순간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바라보며 보낸 한적한 시간이었다. 궁전의 화려함보다 그 앞에 펼쳐진 물결이 더 아름다웠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마치 기둥이나 석조조각 같은 풍경의 일부인냥 그냥 앉아 있는 무위의 시간들이 오히려 좋았다니.





갈라타 타워
갈라타 타워는 그리 크지도 높지도 않지만, 이스탄불 어디에서나 보이는 탑이었다.
1348년 제노바 상인들이 방어 목적으로 세운 이 67미터 높이의 탑은 비잔틴 시대부터 오스만 제국을 거쳐 지금까지 이스탄불을 지켜본 증인이자 기준점이다. 한때 감옥으로, 화재 감시탑으로, 천문대로 쓰이기도 했다. 도시의 랜드마크. 올라가는 길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좁은 골목과 카페들, 그 사이로 점점 가까워지는 타워.
갈라타 타워 입장료는 매우 비쌌다. 30유로니까 한화로 5만원이 넘는다. 무엇이 있을 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입장료로 맛있는 저녁을 먹기로 하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튀르키예에서의 식사는 대체로 만족할만 하다. 그 중 하나 피쉬랩은 꼭 먹어야 한다는 아내를 따라 로컬 가게에 들렀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고등어 케밥. 이 정도 맛이라면 하루에 한끼 정도는 먹을 수 있겠다 싶은 정도.

이때만 해도 어리버리하게 로쿰과 바클라바를 구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석류 바클라바가 최고라는 것을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KG당 가격까지 자연스럽게 외우고 다니게 되었다.



고양이
이스탄불에는 어디에나 고양이가 있었다.
약 12만 5천 마리의 길고양이가 이 도시에 살고 있다는 추산이 있을 정도다. 이렇게 많은 고양이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이슬람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고양이를 매우 좋아했고, 고양이는 그의 언행록인 하디스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고양이를 죽이면 지옥행을 피하려면 17개의 모스크를 세워야 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오스만 제국 시절, 쥐로부터 식량과 목조 주택을 보호하기 위해 고양이를 환영했던 역사도 한몫했다.



그래서 이스탄불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친절하다. 거리 곳곳에 깨끗한 사료와 물이 담긴 그릇이 놓여 있고, 카펫 가게 주인은 자신이 팔 상품 위에서 고양이가 낮잠을 자도 내버려둔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거리 한복판에서도 고양이들은 태평하게 잠을 잔다. 아야소피아와 같은 역사적 건축물 안에도, 카페 앞에도, 시장 골목에도 고양이들이 주인처럼 자리 잡고 있다.
고양이들 역시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면 꿈뻑꿈뻑 눈을 깜빡이고, 다가가 만지면 고로롱거리며 턱을 내민다. 관광객들은 아예 사료를 사서 에코백에 넣고 다니며 고양이들에게 나눠준다. 사람에게 친절하고, 고양이에게도 친절한 도시. 이스탄불은 그런 곳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터키에서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갈라타 타워에서도 나를 보고 포즈를 취하는 어린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의 웃음은 매우 평화로웠다. 이스탄불은 그런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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