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뢰메 셋째날 – 벌룬투어와 우치사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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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뢰메 셋째날 – 벌룬투어와 우치사르성

괴뢰메에서 셋째 날이다.

처음엔 기이한 외계의 풍경에 낯설기만 했는데, 이제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애정이 생겼다.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동굴 숙소의 작은 창, 여기저기 자리한 작은 카페와 느긋한 손님들, 따뜻한 햇살, 맑은 공기, 매일 아침마다 떠오르는 무수한 열기구들. 이 모든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어쩌면 경험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열기구 투어는 인생 최고의 경험으로 손꼽아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멋졌다. 인생의 버킷리스트에 넣어두길 강력히, 감히 권한다.

캄캄한 새벽, 전 세계에서 카파도키아로 모여든 수백 명의 여행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차가운 새벽 공기에 손을 비비며 서 있다. 큰 버너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불길로 거대한 풍선에 들어갈 공기를 데운다. 조금씩, 조금씩 열기구가 부풀어 오르고, 풍선의 모양을 완전히 갖춘 열기구의 크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우리가 타게 될 열기구 밑에는 크고 튼튼한 바구니가 달려 있었고, 그 안에는 여덟 칸의 작은 격벽이 있었다. 하나의 칸에 네 명씩 탑승했다. 그러니까 열기구의 정원은 서른두 명. 서른두 명이나 탔지만 무섭다거나 위험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모두 곧 다가올 짜릿한 경험에 흥분해 있었다.

서서히 열기구가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오고, 전 세계에서 모인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긴다. 인류는 하나다. 어제 지나쳤던 피존 밸리와 괴뢰메 파노라마 위를 유영한다. 멀리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어느새 주위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둘러 주위의 열기구를 세어보니 백 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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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카파도키아의 이런 풍경은 인터넷 배경화면을 통해,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무수히 보았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캄캄한 새벽, 흥분으로 가득한 벌판의 차가운 공기, 열기구를 부풀리는 가스 버너의 뜨거운 숨결, 64색 파스텔로 정성을 다해 칠한 것 같은 열기구의 예쁜 디자인과 색상, 전 세계 사람들의 환호성, 떠오르는 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이한 풍경,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안온한 열기구 비행. 이 모든 감각이 한데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나이를 먹으며 깨닫는 것은 인생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복잡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쉬운 건 많이 경험하지 않으면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젊고 어렸을 때 실패를 경험하고, 두려움을 경험하고, 어리석음을 경험하고 또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험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다시 땅으로 내려와 우리는 생존을 기뻐하며 열기구 탑승 인증서를 받고 샴페인을 나눠 마셨다. 물론 이것까지 열기구 투어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지만 말이다. 🙂


오후에는 우치사르 성에 가보기로 했다. 괴뢰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남짓 달리니 거대한 바위산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치사르 성은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천연 암석 요새다. ‘우치사르(Uçhisar)’라는 이름 자체가 튀르키예어로 ‘세 개의 성’이라는 뜻인데, 60미터 높이의 이 거대한 응회암 바위는 마치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이 바위 요새의 역사는 비잔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하면서 바위 내부를 파내어 주거 공간과 피난처로 사용했다. 수백 개의 방과 통로, 창문이 벌집처럼 바위 전체에 뚫려 있는데, 각 방은 터널로 연결되어 있어 적의 침입 시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특히 셀주크 투르크와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군사 요새로 활용되었다.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략적 위치 덕분에 적의 움직임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고, 실제로 아랍의 침공과 몽골의 침입 때 주민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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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까지도 일부 주민들이 이곳에 거주했지만, 바위의 침식이 심해지면서 안전상의 이유로 사람들이 떠났다. 지금은 관광 명소로 개방되어 있고, 꼭대기까지 오르면 카파도키아 전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 내부를 둘러보니 좁은 계단과 통로가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어떤 방은 비둘기장으로, 어떤 방은 저장고로, 또 어떤 방은 예배당으로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바위 안에서 사람들이 살고, 기도하고, 적을 피하고, 일상을 이어갔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꼭대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피존 밸리, 괴뢰메, 그리고 저 멀리 에르지예스 산까지 보였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이 높은 곳에서 카파도키아의 전경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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