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스탄불 둘째날 – 발냄새를 견디고 만난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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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10일의 기록: 동서양이 만나는 땅을 걷다

튀르키예 여정의 시작

경계의 도시, 이스탄불

괴뢰메, 첫째 날 – 테마파크 같은 마을

느긋함을 먹는 시간, 카흐발트

괴뢰메, 둘째 날 – 일출과 그린투어

괴뢰메 셋째날 – 벌룬투어와 우치사르성

사프란볼루 첫째날 – 그림 속의 집으로

샤프란볼루 둘째날 – 고양이가 안내한 아침

앙카라 1. 튀르키예의 심장, 아타튀르크

앙카라 2. 9천 년 시간을 거슬러, 아나톨리안 문명 박물관

앙카라 3. 성벽과 백조 사이

다시 이스탄불 첫째날 – 창 대신 카메라를 겨누는 광장

다시 이스탄불 둘째날 – 발냄새를 견디고 만난 경이로움

다시 이스탄불 셋째날 – 테셰퀼 에데림

터키에서 가장 화려한 하루였다.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서 나는 너무 무지했다. 모스크를 방문하는 만큼 이슬람에 대해 간략히 공부했다.

전 세계적으로 약 19억 명 이상, 즉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신자를 보유한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 ‘이슬람’이라는 단어는 아랍어로 ‘복종’과 ‘평화’라는 의미이다. 유일신 ‘알라’를 신봉하고 이 알라는 성경의 여호와와 같은 신이다. 무함마드는 신의 메시지를 전한 마지막 예언자이고, 그는 글을 몰라서 계시받은 내용을 모두 구술했다고 한다. 흔히 코란이라고 부르는데 이슬람의 경전은 ‘쿠란’이 정확한 표현이고 ‘꾸란’에 가까운 발음이다.

5가지 의무가 있다. 하루에 5번 성지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의무. 숙소의 야스에게 물어봤는데, 만약 기도 때를 놓치면 그다음 기도할 시간 전까지 적당한 때에 거르지 않고 기도한다고 했다. ‘자카트’라고 수입의 일정 비율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의무도 있고, 라마단이라는 단식 기간도 있고, 일생에 한 번 메카를 방문하는 의무도 있다고 한다.

블루모스크, 술탄 아흐메트 자미(Blue Mosque)

내부 벽면을 장식한 2만여 장의 푸른색 이즈니크 타일 덕분에 ‘블루모스크’라는 별칭이 더 유명하다. 1616년 술탄 아흐메트 1세가 아야소피아의 명성에 도전하기 위해 건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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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모스크에 붙은 6개의 첨탑(미나레트)에 관한 일화도 재미있었다. 이슬람 사원의 첨탑 개수는 보통 해당 사원의 권위와 규모를 상징하는데, 일반적인 사원은 1~2개, 술탄(황제)이 세운 큰 사원은 4개, 메카의 하람 성원(Grand Mosque of Mecca)만 6개였다. 그런데 블루모스크에 6개를 붙여 놨으니 이슬람의 종교 지도자들은 ‘가장 신성한 메카와 동격이 되겠다는 것이냐’고 비난할 수밖에 없었던 것.

뭐, 황제가 황금(Altın, 알튼)으로 지으라고 한 명령을 건축가가 6개(Altı, 알트)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설이 있지만, 사후 변명에 가깝다. 결국 비난이 잦아들지 않자 황제는 메카에 첨탑을 하나 더 기증해서 7개로 만들었고 이후 조용해졌다고 한다.

이런저런 옛이야기를 뒤로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신발을 벗고 블루모스크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전 세계인의 발냄새’였다. 고약한 냄새를 참고 천장을 올려다보면 그 뒤로는 정말 입을 다물 수 없다.

내 평생 보았던 그 어떤 건축물보다도 아름다웠다. 인간의 창의력, 종교의 위대함, 구형 천장과 작은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섬세한 반영.

발냄새만 아니었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

성소피아 대성당이자 아야소피아(Hagia Sophia)

지름 31미터, 높이 56미터의 거대한 돔을 그 당시에 어떻게 구현했을까? 게다가 그 안을 장식하고 있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자이크들. 그야말로 불가사의에 가까운 걸작이라 볼 수 있다.

‘대항해시대’ 게임에서 지중해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하는 역사적 보물, 성소피아 대성당. 내게 성소피아 대성당은 젊음의 기억과도 맞닿아 있는 성소였다.

이 건물은 주인이 여러 번 바뀐 특징이 있다.

서기 537년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기독교 성당으로 건립했다. 그리고는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다’고 자랑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이후 900년 가까이 동방 정교회의 중심지였다가,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했다. 첨탑을 붙이고 사원 안의 성화에 석회를 칠하고 그림을 가려두었다.

그리고 종교 갈등을 줄이기 위해 아타튀르크의 터키 정부가 박물관으로 바꿨다가 지금은 다시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역사 덕분에 비잔틴 문화와 오스만 투르크의 문화가 묘하게 겹쳐 있고 무함마드의 이름 뒤에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있다.

전란과 종교의 갈등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이렇게 후대에 감동을 전해주어 그야말로 다행인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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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뒤로하고 튀르키예의 거리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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