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아내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실습을 다니느라 매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틀간 학원이 방학을 맞이한 사이 지난 기억이 좋았던 대만을 다시 가기로 했다. 타이중에 대한 특별한 정보도 관심도 없었지만 다시 대만에 간다면 타이중과 가오슝을 가봐야겠다는 생각했었다.
다른 여행과 달리 아이들은 함께하지 않았고 또 특별한 계획 없이 그냥 출발한 여행이었다. 숙소와 비행기를 예약한 이후 타이중에 대해서 알아 본 것은 날씨 정도가 전부. 아무런 정보 없는 해외 여행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 스스로 조금 놀랍다. 예전의 나는 책 한권을 요약하는 수준에서 시간 단위의 일정을 짰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남들이 가는 곳과 남들이 먹는 음식, 남들이 좋아하는 곳은 신경쓰고 싶지 않다. 내 관심이 가서 내가 발견하는 것, 물론 그것이 최선일 확률은 높지 않지만, 인생은 최선도 최악도 없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여행이 아닐까?
아내는 이런 곳을 좋아한다. 그런 취향은 나도 비슷하다. 인생은 결국 경험의 축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낯설고 어색하는 것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다가설 수 있게된다.
대만의 야시장은 시장이라기보다 식당에 가깝다. 식당 역시 제대로 된 상점이라기보다 야외에 설치된 테이블 같은 느낌이다. 저녁 식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샤브샤브처럼 원하는 재료를 선택하면 국수나 볶음밥 등을 만들어준다. 재료들은 한국에서는 흔치 않고 또 광동어로 적혀있어서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피자나 스테이크 같은 익숙한 가게도 있다.
대만은 커피 대신 차. 우롱차, 홍차, 버블티를 비롯 굉장히 다양한 차가 있고 이후 우리는 외출할 때마다 벤티 사이즈 크기의 티를 사서 들고 다녔다.
타이거시티는 쇼핑몰. 아내도 나도 쇼핑을 즐기지는 않지만 펑지아 야시장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 사실 스마트폰 배터리가 떨어져 충전을 위해 스타벅스에 갔었는데, 110v 전원 코드를 가져오지 않아 충전기를 쓸 수가 없었다. 혹시 타이거 시티에는? 이런 생각을 하며 들렀다.
뜬금없이 대학을 오게 됐는데 이게 또 좋은 선택이었다. 동해대학 내의 루체 성당을 보기 위해서 왔지만 캠퍼스를 둘러보는 것으로도 무척 재미있었다. 동해대학은 대만에서 가장 넓은 대학교이고 두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라고 한다. 엄청나게 넓은 서울대학교가 47헥타르인데 동해대학교는 100헥타르이니 얼마나 넓은지.
동해대학교 정류장을 놓쳐서 한정거장 뒤에서 내렸지만 이또한 재밌게도 꼬불꼬불 뒷길을 걸어 쪽문으로 대학에 진입하게 됐다. 정류장에서 내려 일단 티를 하나 사들고 걷다가 고소한 냄새에 홀려 샤인무드 와플이라는 와플 전문점에 들렀다.
대학으로 들어가 학생회관, 연구관을 거쳐 공학관 등에서 수업하는 학생을 지켜보기도 했다. 할수만 있다면 강의를 한시간 듣고 싶었다. 루체 대성당은 성당 같지 않게 빛나고 있었고 학교는 유바이크 베이스도 여럿 있고 수영장/헬스장/체육관/배구장/농구장/테니스장/대운동장 등등 체육 시설도 매우 다양했다. 학내 식당과 편의점도 구경하고 각 단과 대학의 개성적인 디자인과 학생들의 행사 포스터를 구경하는 것으로 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는 타이중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쉬어가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이곳에는 노숙자들을 꽤 여럿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의 차림은 한국과 비슷했다. 어느 곳이나 비슷하겠지만 현재 자본주의의 생산력과 사람들의 복지는 정비례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 바로 순수자본주의의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
아주 유명한 디저트 맛집. 베스킨라빈스와 비슷하게 여러 종류의 아이스크림 중에 몇개를 골라 먹는 방식이었다. 작은 콘 하나씩을 골라 먹고 초컬릿과 펑리수가 있는 베이커리를 둘러봤다. 예전같으면 풀버전 (3스쿱과 와플컵에 장식까지)을 골랐겠지만 그런 경험이 큰 의미가 없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저녁까지 시간을 보낼 곳을 찾다가 구글맵에서 발견한 “타이중 문화창의산업원구”에 들렀다. 이곳은 오래전의 양조장을 개조하여 공동작업실이나 문화강좌, 전시실 등으로 활용하는 시설이었다. 일본은 오래된 건물을 끊임없이 개보수해서 사용하고 대만은 이렇게 현대식으로 개조하는 것 같다. 반면 한국은 헐고 새로 짓는 경우가 많아서 오래된 도시일 수록 개성 없이 비슷해지는 면이 있다.
귀국하는 날이다. 체크아웃하고 오전 시간이 비어 들른 절. 26미터의 대형 불상이 있다고 했는데 부처가 아니라 포대화상이었다.
포대화상은 미륵보살의 화신이라 하며 몸집이 뚱뚱하며, 이마는 찡그리고, 배는 늘어져 이상한 모양을 하였으며, 말이 일정치 않고, 아무데서나 눕고 자고 하였다. 언제나 지팡이에 자루를 걸어 메고, 소용되는 물건은 모두 그 속에 넣어 가지고 거리로 다니면서 무엇이든 보기만 하면 달라고 하여, 먹을 것을 주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자루 속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 불렀다.
이 포대화상의 아무 걱정없는 미소와 무엇하나 개의치 않고 풀썩 주저앉은 자유분방한 모습이 해탈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다. 가진 것에 미련을 두고 걱정하고 근심하고 인연에 아파하는 중생들로서는 가질 수 없는 자태.
삶이 죽음의 뒷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조금 더 살고 싶고 조금 더 가지고 싶은 마음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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