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봉사 활동을 마치고 여유로운 대화를 즐긴 지난 주 일요일 저녁부터였다. 일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밥을 먹지 못했다. 밥 대신 죽을 먹으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먹는 둥 마는 둥 몇 숟가락 뜨다가 이내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일요일 밤에는 미열도 있고 설사가 반복되어 장염인가 자가 진단을 내렸다. 월요일에 증상이 악화돼 신열이 오르고 무력해졌다. 화요일에는 병원에 갔다. 담당 의사는 2021년도에 무슨 병이 있었는 지 물었다. 장염으로 의심되니 약을 먹고 탈수 증상이 있으니 수액을 맞고 가자 했다. 병상에 누워 링거를 꽂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나지 그 순간부터 나는 다시 환자가 됐다. .

‘아프기 싫다, 또 아프면 못 견디겠다, 아 이제 그만. 살만큼 산 거 아닌가…’
장염이야 아기들에게도 흔한 병이지만 겨우 그런 고통에도 내 정신과 몸은 한없이 움츠려 들었다. 나는 절망했다. 내가 가진 병에 대한 트라우마는 보통 사람은 짐작할 수 없을만큼 거대했다.
다시 이틀을 견뎠지만 차도가 없었다. 물만 마셔도 내 몸은 아무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모두 흘려보냈다. 와이프가 동네에서 제일 잘 본다는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주치의가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야하나 고민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거기는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제일 잘 본다던 원장 의사는 마침 휴진. 그러니 그 병원을 찾은 이유도 사라진 셈이다. 화요일에 만난 의사와 비슷한 대화를 나눴다. 다만 이 의사는 장 폐색이나 재발 쪽에 의심을 두는 질문을 던졌다. 한참의 진료 끝에 항생제 그리고 좀 더 강한 지사제를 처방받았다. 약을 살펴보니 역시나 장 운동을 촉진하는 약들이 추가됐다.
금요일이다. 근무일로 정확히 5일째인데 역시 나아지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음주 월요일 아침 일찍 용산에서 피켓팅이 있다. 거기에서 들 피켓을 미리 챙겨두어야 하는데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사무실에 출근한 누군가에게 부탁해도 됐겠지만 모두들 바쁜 시기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내에게 운전을 부탁해 인쇄 업체에 들러 피켓을 싣고 사무실에 피켓을 옮겨 두었다.
새로운 약을 먹은 탓인지 아니면 장이 어느 정도 회복됐는지 설사가 잦아드는 듯 했다. 1주일만에 첫 식사를 조심스럽게 시도개봤다.
방금 전 방충망에 붙은 매미의 치열한 울음 소리에 잠을 깼다. 어느새 한 주가 지나 토요일 아침이다. 한강 작가는 매일 새벽 가장 정신이 맑은 시간에 글을 쓴다고 했는데, 나는 장염이나 걸려서야 겨우 새벽에 잠을 깼다.
7년을 땅 속에서 머물다가 겨우 보름 남짓 지상에 나오는 서러운 생물. 그 보름 안네 종족 번식을 위해 여름 내내 쉼 없이 짝을 찾는다. 그 찰나의 생과 우뢰같은 매미 소리는 성스러운 일깨움을 준다.
어찌됐든 살아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게 의미가 있든 없든 살아 있으니까 하는 것이다.
울어라 울어라 생이 끝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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