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금오산(金鰲山)
신라 선덕여왕 13년(644년) 원효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현 관음전 자리에 원통암(圓通庵)으로 창건.
조선 숙종 41년(1715년) 인묵대사가 현 위치로 이건하며 향일암(向日庵)으로 개칭 향일(向日)은 ‘해를 향한다’, 혹은 ‘대일여래(비로자나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두 가지 뜻을 품은 이름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말사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 양양 낙산사와 함께 한국 4대 관음기도 성지
바위 틈 사이를 몸을 낮춰 통과하는 해탈문, 남해 수평선 일출로 유명한 해맞이 명소
여수에 다시 온 것은 8년 만이었다. 사진을 찾아보니 2014년 3월에 찍은 것이 나왔다. 그때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게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간장게장을 맛있게 먹었다는 것 정도.
고통의 계단

향일암은 계단이 많다. 꽤 많이 올라야 한다. 지난 근수축 이후로 계속 다리가 좋지 않았다. 오를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계단에 발을 얹을 때마다, 이상하게도 지나온 시간들이 떠올랐다. 하나 오르면 하나가 따라왔다. 그 많은 고통의 순간들이, 계단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발이 아픈 것인지, 마음이 아픈 것인지 모를 채로 천천히 올랐다.
해탈문 앞에서
바위 틈 사이, 사람 하나 겨우 통과할 크기의 해탈문이 나타났다. 그것을 보는 순간, 8년 전 여기 왔었다는 기억이 올라왔다. 이 좁은 틈을 지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인가. 몸을 낮추고 바위 사이를 빠져나왔다.

향일암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산도에서 시작해 여수에서 끝을 맺는 한려수도의 쪽빛 바다가 펼쳐졌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신기루처럼 떠 있었다. 사막 건너인지 바다 건너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경계가 흐릿한 것이, 지금 내 안의 어떤 것과 닮아 있었다.
원통보전은 관음기도 도량의 중심 법당이다. 들어서서 삼배를 올렸다. 관음전에서는 반배를 드렸다.
아프지 않게 해달라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낯이 간지러웠다. 대신 이렇게 여쭤봤다. 사는 것이 고통이라면, 그 고통은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인지.
부처님은 답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그 시선은 오히려 답은 내안에 있다고 답하는 듯 했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한동안 다리를 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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