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등운산(騰雲山)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 의상대사가 창건.
창건 당시 이름은 ‘높이 뜬 구름’을 뜻하는 고운사(高雲寺)였으나, 이후 최치원이 이곳에 머물며 가운루와 우화루를 짓고 자신의 호 고운(孤雲)을 따 절 이름을 고운사(孤雲寺)로 개칭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해동제일지장도량’으로 불림
2025년 3월 25일 의성 산불로 주요 전각 전소, 의성 산불은 성묘객의 실화로 시작해 경상북도 45,157헥타르를 태운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
방문하기 전까지는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없었다. 뉴스로 보았고, 숫자로 들었고, 사진으로 확인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는 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
천년 숲길
절 주변은 일품으로 평가받는 멋진 송림이 있던 곳이었다. 고운사 산문에서 이어지는 천년 숲길은 이제 시커멓게 그을린 나무들로 가득했다. 오래된 소나무들이 불길을 맞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타다 멈춘 것들이 줄지어 서 있는 그 길을 걸으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일주문을 지나자 그을린 채로도 아직 생명을 이어가는 노송들이 눈에 들어왔다. 탄식이 먼저였다. 살아 있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오래 바라볼 수가 없었다.





가운루는 계곡 양쪽 기슭을 가로질러 세운 누각으로, 계곡 가장 낮은 곳 암반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마루와 팔작지붕을 올린 건물이었다. 계곡을 다리처럼 가로지르는 그 자태가 고운사의 얼굴이었다. 1668년에 지어진 보물이었다. 지금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호랑이 눈동자가 관람객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우화루의 벽화도, 조선 영조가 내린 어첩을 보관하던 연수전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계곡을 건너 안으로 들어서면 그야말로 주춧돌만 남아 있는 고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종은 깨어진 채 마당에 방치되어 있었고, 곳곳에는 아직도 불길의 흔적이 가득했다.
인간의 어리석음
이 산불은 성묘객의 실화로 시작됐다. 1,300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온 절이, 누군가의 부주의 하나로 하루아침에 재가 됐다. 임진왜란도, 일제강점기도 넘긴 절이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지키지 못한 것들에 대해 오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운사를 둘러싼 산 꼭대기에는 바싹 타버린 죽은 나무들이 빼곡했다. 그런데 그 아래, 까맣게 그을린 땅 사이로 푸른 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자생 복원되는 것들이었다. 아무도 심지 않았는데 스스로 올라오는 그 생명들이 대견스럽고 또 고마웠다.
불에 탄 것들은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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