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봉황산(鳳凰山) 중턱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수사찰(首寺刹)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
무량수전(국보), 조사당(국보), 소조여래좌상(국보), 석등(국보) 등 국보 5건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유산 보유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소백산맥의 풍경이 빼어나며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재
부석사는 오래전부터 자주 찾던 절이다. 사계절을 모두 돌아보았고, 그때마다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오계를 받은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같은 길인데, 발의 무게가 조금 달랐다.
영주를 지나며
부석사로 가려면 영주, 단산, 풍기를 지나야 한다. 이 길을 지날 때면 늘 마음이 먼저 편안해진다. 넓고 풍요로운 밭과 과수원이 펼쳐지고, 그 뒤를 모나지 않은 부드러운 산이 감싸고 있다. 계절마다 포도, 복숭아, 사과 같은 과일들이 어디보다 맛있게 익어가는 곳. 산이 날카롭지 않아서인지, 이 땅에는 사람을 다독이는 무언가가 있다.
어느 덧 부석사에 도착했다. 경사지를 따라 여러 단의 석단 위에 건물이 자리하고 있어, 안양루 아래를 지나 계단을 오르는 과정에서 무량수전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여러 번 와도 이 순간은 매번 새롭다.
무량수전은 고려 우왕 2년(1376년) 원응국사가 다시 지은 건물로, 앞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 주심포 양식이다. 봉정사 극락전이 더 오래된 것으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천 년이 훌쩍 넘는 이 건물 앞에 서면 그런 비교가 무색해진다. 충분히, 그리고 오롯이 아름답다.
배흘림기둥을 손으로 짚어보았다. 가운데가 불룩하고 위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그 곡선. 시각적 착시를 보정하기 위한 오래된 지혜가 손끝에 전해졌다.
옛 사람들의 지혜와 유쾌한 유머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으며,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 떼를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앉았다고 한다. 그 바위가 부석(浮石), 뜬돌이다. 실을 바위 아래로 통과시켜보면 막히지 않고 나온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신비롭다기보다는 재치 넘치는 유머 같다. 흠모하는 마음을 용으로 만들고, 그 용을 바위로 굳혀 절 이름으로 삼다니. 옛사람들은 참 유쾌했다.
부석사의 가람 배치가 화엄종의 ‘화(華)’자 형상을 이룬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절을 짓는 일이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 뜻을 새기는 일이었구나 싶었다. 그 세심함과 현명함 앞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초여름의 부석사
초여름의 부석사는 사방이 짙푸른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꽃도, 낙엽도 없는 풍경이 조금은 심심했다. 부석사는 역시 가을이 좋다.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드는 계절, 그때의 부석사는 다른 어느 절과도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무량수전 안으로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마침 스님께서 경을 읽고 계셨다. 그 소리에 맞춰 조용히 염주를 돌렸다.
부처님께 여쭤보았다. 사는 게 고통이라지만,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아프다고. 저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부처님은 답하지 않으셨다. 스님의 경 읽는 소리만 법당 안을 조용히 채웠다. 언제나와 같은 침묵이지만 그것이 섭섭하지는 않았다.
빛
요즘은 빛에 자꾸 눈이 간다. 나뭇잎을 통과하느라 어두워진 빛의 흔적, 계단에 걸쳐 윤곽을 그려내는 밝은 빛, 그림자와 빛의 경계. 부석사의 오래된 돌계단 위에서도 그 경계를 한참 바라보았다.
빛은 막히면 어두워지고, 통과하면 다시 밝아진다. 부석의 전설처럼, 실 한 가닥이 통과할 틈만 있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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