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팔공산(八公山) 동학동 골짜기
493년 보조국사가 유가사(瑜伽寺)로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832년 흥덕왕 7년 심지조사가 중창하면서, 한겨울에도 절의 오동나무가 꽃을 피운 것을 상서로운 징조로 여겨 동화사(桐華寺)로 개칭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 전국 146개 말사와 7개 산내암자를 거느린 대찰, 보물 15점 보유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영남도총섭으로서 동화사를 영남 승병의 본영으로 삼아 지휘
봉서루 앞 자연석 — ‘봉황의 꼬리’와 ‘봉황의 알’로 불리며, 팔공산이 봉황 형상으로 대구를 감싸 안고 있어 동화사가 그 봉황의 아기집 자리에 해당한다는 풍수 이야기가 전해짐
주차를 하자마자 눈에 띄는 건 ‘사명대사 전법 호국관’이다. 임진왜란 당시에 사명대사가 승병의 총본영으로 삼았다고 한다.
동화사에 얽힌 전설이 상서롭다. 겨울인데도 오동나무가 꽃을 피운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새로 절을 지으며 이름을 동화사라 했다고 한다. 겨울에 핀 꽃 한 송이가 절의 이름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 이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시 같았다.
동화사는 팔공산 국립공원 안에 있었다. 팔공산이 국립공원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주차장에서 사찰로 이어지는 길이 매우 아름다웠다. 폭포골, 빈대골, 수숫골 사이로 깊게 자리한 골짜기를 따라 걷는 길이었는데, 산이 절을 품에 안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친근한 절
신라 시대부터 이어온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동화사는 친근한 인상을 주는 절이었다. 많은 신도들이 찾아 늘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절에서는 보지 못했던 독특한 법당도 있었다. ‘교통안전기원당’.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이 비는 것도 달라지고, 절도 그 변화를 함께 품고 있었다.
1992년 조성된 높이 33미터의 세계 최대 석조 약사여래불, 통일약사여래대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도무지 그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 가까운 곳에 있을 텐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끝내 만나지 못했다. 다음에 다시 오면 꼭 봐야 할 목록에 추가했다.
봉서루와 봉황알
대웅전 앞에는 ‘봉서루(鳳棲樓)’가 있었다. 봉황의 기운이 서린 누각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그 앞에 봉황알이라 불리는 돌이 놓여 있었다. 알처럼 둥글둥글한데, 다듬은 것이 아니라 자연석 그대로 솟아오른 모양이었다. 풍수지리상 팔공산이 봉황의 모습으로 대구를 감싸 안고 있고, 동화사는 그 봉황의 아기집 자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 바위를 일곱 번 어루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했다. 무수한 손길을 받은 탓인지 바위 표면이 반짝반짝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소원을 빌며 이 돌을 만졌을까. 그 손길들의 누적이 고스란히 보이는 듯했다.
1725년 화재로 소실된 후 1727년에 중수된 대웅전의 문에는 정교한 꽃창살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세월의 먼지가 쌓이고 채색도 많이 바랬지만, 그 무늬 하나하나에는 새긴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빛깔은 사라져도 정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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