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팔공산(八公山)
통일신라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사(海眼寺)로 창건.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화상이 현재 위치로 옮겨 지으며 은해사(銀海寺)로 개칭
1847년 대화재로 극락전을 제외한 천여 칸의 건물이 모두 소실, 1849년 중창
중창 당시 대웅전·보화루·불광의 삼대 편액을 추사 김정희가 직접 씀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 말사 39개소, 부속 암자 8개소 관장
산내암자 운부암(연못)과 중암암(돌구멍절, 만년송, 극락굴) 등 팔공산 일대 암자가 유명
은해사. 은빛 바다.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마음에 남았다. 불보살이 은빛 바다처럼 춤춘다는 서정적인 이름이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는 길이 좋았다. 평지였고, 소나무 그늘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작은 천이 옆으로 흘렀다. 사찰까지 가는 길이 의외의 선물 같았다. 오전에 고운사의 그을린 나무들 때문이었는지 새삼 초록이 더 반가웠다.
추사 글씨
은해사는 추사 김정희의 현판으로 유명하다. 1847년 큰불로 절 전체가 거의 소실되고 1849년 중창하면서, 대웅전과 보화루 등 주요 편액을 추사가 직접 썼다. 입구 누각의 ‘보화루’, 그리고 ‘대웅전’ 현판이 그것이다. 대웅전 현판은 현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데 직접 보지는 못했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의 현판도 추사의 글씨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추사의 다른 서체에서 ‘극’, ‘락’, ‘보’, ‘전’ 네 글자를 따로 찾아내 모은 집자(集字)라고 한다. 그러니 추사의 글씨가 맞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셈이다.
가슴에 송곳이 박히고 소름이 돋는, 쇠꼬챙이가 바위를 뚫는 듯한 기세의 필획이 추사의 글씨라는 표현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그랬다. 가을 아침의 서릿발 같은 글씨. 찬찬히 보고 있으면 감탄보다 두려움이 먼저 온다.
그런데 추사의 행서나 예서를 보면 그 생각이 또 지워진다. 부드럽고 자유로운 필치가 전혀 다른 사람의 글씨처럼 보인다. 무림의 고수가 여러 장법을 구사하는 것처럼, 추사는 그저 자리와 뜻에 맞는 서체를 골라 썼던 것이 아닐까. 차가움도, 부드러움도, 모두 그의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팔공산 자락의 산내암자들도 흥미로웠다. 아름다운 연못을 품은 운부암과, 바위와 바위 사이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중암암, 그곳의 만년송과 극락굴까지. 설명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하지만 많이 걸을 수 없는 다리 사정으로 그곳까지는 가지 못했다. 평지 산책길에서 본 좋은 풍경을 위안으로 삼고 돌아섰다. 차가운 글씨와 따뜻한 이름을 함께 품은 절. 다음에는 운부암의 연못과 중암암의 바위 틈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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